.한국, 헤이그협약 가입 계기로 본 해외입양의 그림자
8살에 미국 보내져 30년 뒤 추방돼 돌아온 한호규씨
고아로 호적 세탁돼 입양 … 나 같은 비극 다신 없기를
한호규씨는 “고아도 아닌데 엉뚱하게 입양을 가는 나 같은 비극이 다신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씨는 7세 때 길을 잃어 고아원으로 가게 됐다. 이후 고아원은 돈벌이를 위해 미아인 한씨의 신원을 고아로 세탁해 미국으로 입양시켰다. 지난 24일 서울 이태원동 거리에 서 있는 한씨.
지난 24일 한국은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에 가입했다. 태어난 나라에서 가장 먼저 보호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를 규정한 국제조약이다. 이에 따르면 입양기관이 아닌 양국 정부가 직접 입양아의 입국에서부터 국적 취득까지 입양 절차 전반을 검증하고 책임진다. 왜 이런 조치가 필요할까. 이 질문에 답이 될 한 남자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가 여기 있다. 2009년 11월 3일 미국 텍사스 댈러스 포트워스 국제공항 출국장으로 몬트를 압송하던 국토안보부 직원의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당신은 이제 미합중국 영토 어디에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30년의 미국 생활은 이렇게 간단하게 끝났다. 하지만 몬트에겐 너무도 복잡한 문제였다. 그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으며, 친구도 없었다.
“한국에서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몬트가 그 직원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무성의했다.
“그건 당신 나라에 가서 물어보세요.”
길 잃고 미아됐다가 고아원 돈벌이에 희생
당신 나라라니, 기가 막혔다. 그는 30년 전 미국으로 입양돼 줄곧 미국인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 나라로 돌아가라고. 납득할 수 없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는 명령이었다. 미국으로 올 때 그랬던 것처럼 선택은 없고 명령만 있었다. 다음날, 2009년 11월 4일 인천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 몬트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몬트가 아니라 한호규(42)였다. 입양인 게스트하우스를 들락거리다 지금은 서울 이태원동에 둥지를 틀었다. 매일 레스토랑에서 오후 6시까지 일을 한다. 그가 이태원을 벗어나는 경우는 좀체 없다. 말이 통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그에게 이태원은 삶의 터전이면서 빠져나갈 수 없는 섬 같은 곳이다. 그는 자신의 강제추방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정식으로 입양됐는데 어떻게 불법체류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일곱 살에 서울 할머니 집에서 나와 혼자 길을 헤매다 미아로 발견됐다. 한 미군이 경찰서로 보냈고, 경찰은 한 영아원으로 보냈다. 그때가 1977년 10월 24일이다. 입소 다음 날 영아원은 한 입양기관에 해외입양을 의뢰했다. 다음 달인 11월 23일 입양기관은 그의 고아호적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다음해 11월 그를 미국으로 보냈다.
양아버지 학대 … 가족들 신고 못하게 위협
당시 입양제도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멀쩡하게 부모가 있는 아이인데도 입양기관은 한 달 만에 고아로 만들었다. 오로지 입양을 보내기 위해서. 당시 돈벌이와 관련한 이 같은 호적세탁은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실제 그의 호적은 살아 있었다. 이 덕분에 30년 만에 고국으로 쫓겨온 몬트가 25일 만에 칠순이 넘은 생모를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이름 한호규도 되찾았다. 마흔이 다 돼 돌아온 아들을 보고 노모는 오열했다. “30년간 매일 밥상에 네 밥그릇을 올렸단다.” 그는 친모가 그를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녔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 친모와 보름에 한 번꼴로 통화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제대로 대화를 못 한다. 친모의 눈물을 보며 불현듯 미국인 백인 양부모가 떠올랐다. 너무나도 무섭고 괴롭던 기억이었다. 그는 미국 중부에서 양부모와 살았다. 양아버지는 그를 때리고 학대했다. 가족들은 그에게 “경찰에 신고하면 양아버지가 잡혀 갈 거야. 그러면 너도 끝이야”라며 겁을 주었다. 한씨가 미국으로 입양 갔을 때 양부모에겐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양육권만 주어졌다. 아이가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선 차후 시민권 취득 절차를 따로 밟아야 했다. 그런데 입양아 양육을 중간에 포기하는 양부모는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양부모는 한씨가 18세가 될 때까지 법적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양부모가 이혼하면서 한씨는 위탁시설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미국 시민권 취득이 안 된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시민권 신청 안 해줘 불법체류자로 살아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그는 자연스레 어둠의 길로 빠져들었다. 성인이 된 후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 93부터 3년간 이라크에서 주둔했다. 걸프전이 끝난 후 이라크 재건 사업에 투입됐다. 전역 후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2001년 어느 날 그는 친구가 부탁한 화물을 배달했는데, 그 속에 마약이 들어 있었다. 마약 운송 혐의로 체포된 그는 4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이때 조사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한씨를 조사하던 이민국 직원은 “주마다 외국인보호소에는 수십 명의 한국 입양인이 불법체류자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알려줬다. 복역을 마친 한씨는 불법체류자에 범죄 경력 낙인이 찍혀 집중관리 대상이 됐다. 출소 후에도 6개월에 한 번씩 이민국에 와서 신고를 해야 했다. 이 의무를 3년 넘게 지키던 그는 2008년 8월 이민국 신고 의무를 딱 한 번 어겼다. 한씨는 결국 강제 추방됐다. 지난 24일 한국은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에 정식으로 가입했다. 이 협약은 해외입양에 국가 간 협력 필요성이 제기돼 93년 5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회의에서 공식 채택됐다. 한국을 포함, 세계 91개국이 가입돼 있다. 호적을 조작해서 아이를 해외로 입양시키는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계기가 마련됐다. 한국 정부는 협약 가입을 위해 사전 준비작업을 했다. 지난해 8월 입양특례법을 바꿔 미혼모의 아이도 출생신고를 의무화했고 입양까지 7일간의 숙려기간을 뒀다. 입양을 보내려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성공한 입양아는 소수, 대부분 겉돌아
협약은 입양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길 것을 강조한다. 우선 출생국 가정(위탁가정 포함)에서 보호할 것을 권고한다. 불가피하게 입양을 보낼 경우에도 국내가 우선이다. 해외입양이 이뤄질 때 양국 정부는 양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입양아 국적 취득을 보장한다. 입양 전반을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다. 가령 미국으로 입양하려면 한국 보건복지부와 미국 국무부가 책임을 진다. 정부는 입양특례법을 추가로 개정해 이런 절차를 담아 2년 후 국회 비준을 받을 예정이다. 그동안 많은 입양인이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는 합리화 속에 외국으로 나갔다. 한국은 6·25전쟁 이래로 16만5000명의 입양아를 미국·스웨덴·프랑스 등 9개국으로 보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한 해에 2000명이 넘는 아이가 해외로 입양되다 지난해는 755명으로 줄었다. 그중 일부는 프랑스의 플뢰르 펠르랭 중소기업혁신디지털부 장관처럼 좋은 환경에서 잘 성장했지만, 몬트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국에 돌아와 뿌리를 찾지 못하고 배신감과 박탈감을 안고 돌아가는 입양인도 있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들이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게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의 정신이다. 최소한의 인륜적 도리에 관한 약속인 셈이다.
.북한식 전체주의, 겁날 정도로 기괴… 보고 있는 것이 끔찍합니다
슬라보예 지젝은 19세기를 사로잡은 독일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아래)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그는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를 ‘잉여 쾌락(surplus enjoyment)’ 개념으로 해석한 라캉(프랑스)과 헤겔·프로이트 등을 접목해 사회주의·자본주의 등 모든 이념의 총체성을 비판해 왔다. 둥그런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 등 지젝과 마르크스의 모습이 우연히도 닮아 보인다.
마르크스 이후 가장 인기있는 공산주의자 '지젝 신드롬'… 패션인가, 지적 허영인가
저서만 50권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겸 마르크스주의자' 지젝 이메일 인터뷰
20·30대 젊은층의 知的 아이돌
얼굴·이름 새긴 티셔츠 등 불티나게 팔려… 英로열오페라 "지젝 위한 오페라 4곡 쓸것"
북한·20세기 공산주의에 혐오감
무능한 좌파, 근원적 위기 맞아
월스트리트 시위 등 반전의 계기 왔지만… 사회발전 에너지로 바꿀 대안 없어 놓쳐
작년 6월 말 경희대 '평화의 전당' 뒤뜰에 20~30대 대학생·직장인들이 잔뜩 모였다. '동유럽의 기적'이라 불리는 '21세기 대표적인 공산주의자' 슬라보예 지젝(Zizek·64)의 방한 강연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이들이었다. 이날 강연을 신청한 이는 1만여명. 4500석 객석을 꽉 채우고도 강연장에 못 들어간 이가 상당했다. 그가 나오기만 손꼽던 이들 중 몇몇은 그의 모습이 비치자 대뜸 달려가 "한번 안아봐도 되느냐"며 그를 반겼다. 마치 '아이돌 스타'를 맞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당시 그를 경희대에 초청한 이택광 교수는 지젝에게 "일부는 당신을 20~30대의 '지적 허영'을 채워줄 상징물로도 소비한다. 명품 백에 딱 어울리는 액세서리라며 패션 상품화하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지젝은 스스로 이렇게 비치는 걸 잘 안다고 했다. 지젝의 반응은 이랬다. "멍청한 것들!(Stupid)"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겸 마르크스 신봉주의자인 지젝. 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hot)'한 철학자 중 하나다.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최근 '뮤즈(영감을 불어넣는 이)'로 지젝을 선택해 그를 위한 오페라 4곡을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철학계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별명답게 그의 얼굴과 이름을 새긴 '지젝 티셔츠'는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지젝!'이란 제목의 1시간짜리 영화도 있다. 국내에선 '철학·예술·정치' 막론하고 그의 이름이 하도 자주 회자돼 젊은 층 사이에선 '지젝거리다'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그가 저술한 책 50여권 중 30권도 넘게 번역 출간됐고, 최근 그의 신간 선(先)인세는 보통 인문서 선인세의 10배에 달하는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로 치솟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스스로 '복잡한 공산주의자'라고 외치는 지젝에게 자본주의 세계는 왜 이렇게 열렬한 구애를 보내는 것일까. 1980년대 말 동유럽과 소련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실패한 이념으로 낙인찍힌 이 시점에 그가 주장하는 '공산주의'에 왜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오는 9월 경희대학교 외국어학부 석좌교수 자격으로 한국을 찾는 그에게 이메일로 그 이유를 물었다. 9월 말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 등과 함께 '공산주의 이념(The Idea of Communism)' 학술대회를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연다는 그에게 '지젝식 공산주의'가 대체 무언지, 대체 왜 '공산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는지 물었다. '인간 마이크'라고 불리며 스탠딩 코미디식 즉흥 연설에 뛰어난 그는 답변 중간중간에 '불가능을 요구하라!' '공동의 것(commons)을 쟁취하라!'는 등 마치 연설을 해대는 듯한 말투로 A4 9페이지나 되는 긴 답변을 보내왔다.
'공산주의'는 시대의 위험을 알리는 상징적인 표현
그는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불렀지만 20세기식 공산주의와는 거리를 뒀다. "공산주의는 20세기 전체를 사로잡았지만 1990년 완전히 패배한 뒤 불명예스럽게 끝을 봤어요. 보세요. 공산주의라는 이름은 북한식 전체주의를 통해 겨우 살아남긴 했죠. 그런데 그것이 진짜 공산주의입니까? 겁날 정도로 기괴한(terrifying eccentricity) 정권으로 변용돼 있어요. 보고 있는 것이 끔찍(horrible)합니다." '북한과 공산주의'라는 데에 글자 하나하나 '혐오감'을 내비친 그는 대체 왜 '공산주의를 부활시키자'고 말하고 있는 걸까. "'공산주의'란 단어를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껄끄럽고 회피하고 싶어지지 않나요? '새로운 방식의 공산주의가 온다'고 하면 자본주의 시대는 막을 내리는 것 같죠? 그 단어엔 그런 '힘'이 있어요. 그런 '충격요법'을 노리고 사용하는 겁니다. 사회에 경각심을 주고 싶어서 상징으로 차용한 겁니다." 그는 "당신은 행복하냐"며 말을 이었다. "한국은 어떤가요. 독재가 있긴 했지만 결국 민주주의가 독재를 극복했어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름답게 결합한 형태로 보이죠. 하지만 당신, 행복합니까?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본주의가 득세하고 있지만, 희망찬 유토피아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왜 여전히 비참할까요." 그는 "나는 민주주의도 신봉한다"고 전제하면서 "민주주의 자체는 선하지만 우리가 힘든 건 민주주의처럼 보이는 가짜 마스크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환경을 무자비하게 오염시키는 기업과 공적자금으로 겨우 연명하는 주제에 터무니없는 보너스를 챙겨가는 쓰레기 같은 은행가, 어린이에게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하는 노동 착취 현장 등을 고발하는 서적·신문 기사·방송 보도가 넘쳐나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걸 빼먹고 있습니다! 현상에 대해 비판은 하면서도, 이러한 문제를 양산하는 자유민주주의 제도 틀 자체의 결점에 대해선 왜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아버리나요!" 그는 "현실주의자가 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Soyons realists, demandons l'impossible!)"고 강조했다. "체제를 전복하자는 게 아닙니다. 전 절대 무정부주의자도 아니에요. 오늘날 진정한 유토피아를 이루기 위해선 현존하는 체계하에서 잘못된 문제를 풀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현실적 선택은 이러한 시스템하에서 불가능하게 보이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죠." 그는 그렇다고 좌파를 옹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현실세계에서 좌파는 근원적 위기를 맞이했다"고 강조했다. "나는 나를 '선지자(prophet)'로 떠받드는 이를 경계합니다. 번성하는 자본주의 시대에서 좌파는 '당신들의 번영은 허상이고 곧 재앙이 닥칠 것이오'라고 예언자인 양 떠들기만 하면 됐어요. 대중이 추앙했죠. 그런데 그것에 결국 발목을 잡혔어요." 그는 좌파의 무능을 꼬집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월스트리트 시위 등 경기 침체와 사회적 해체가 닥쳐왔어요. 예스! 예스! 좌파가 기다려왔던 시대가 왔어요. 그런데 그 결과는요? 좌파들은 일관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이러한 혼돈을 역동적인 사회 발전 에너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대응책도 없이 무능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태도는 비난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스스로도 어떠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관성 없는 글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영국 유명 철학자 존 그레이는 최근 지젝의 공산주의에 대해 "실질적 대안을 주지도 못하는 형체 없는 급진주의"라며 "지젝은 미디어와 스타를 추종하는 자본주의 하위문화가 만들어낸 허영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지젝은 "나의 풍자를 모르는 존 그레이의 얕은 오독(誤讀)이 빚은 지루한 사건"이라고 반박했지만 서유럽 일부 지성인 중 존 그레이 의견에 찬동을 보내는 이도 적지 않았다. 지젝은 자신을 향한 비난에 "나는 철저한 헤겔주의자로 양측의 의견을 비판해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며 "나는 철학자일 뿐, 나에게서 해결책을 기대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 스스로도 '대책 없다'는 걸 인정한 셈이란 지적도 있다.
결국은 그도 '문제'라는 자본주의를 만끽한다?
그는 '선동자'도, '해결자'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가 마치 어떠한 대단한 해결책이라도 갖고 있는 양 그를 추종한다. 그의 인기가 대체 어디서 연유했는가를 물었더니 "나도 알면 답해주고 싶소"라고 반문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내 얼굴과 대면하는 일이오. 말할 때마다 과도한 틱장애(본인도 모르게 특정 근육이 반복돼 움직이는 것)로 고생하는 나를 왜 사랑하는지 그것이 의문이오." '팝 스타 마돈나 혹은 저스틴 비버가 앨범을 발간하는 것보다 더 자주 책을 내놓는다'는 평이 달린 그의 인생 자체가 '정·반·합'으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1949년 슬로베니아의 부유한 공산주의 간부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90년 '자유민주당' 후보로 슬로베니아 대선에 출마한 적 있다. 그는 "철학자라고 해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피상적인 연설 내용에 환호하는 청중을 보고 정치를 그만두게 됐다"고 했다. 그 스스로 공산주의 체제의 종말을 목격했고, 프랑스에서 정신분석학 박사학위를 받으며 서구 철학계와 깊이 교류하고, 2000년대 들어 자본주의 총아인 미국으로 넘어가 컬럼비아·프린스턴 등 유명 대학에서 강의하며 미국 사회를 경험했다. 사람들은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것들의 모임"이라고 그의 인생을 평했다. 3번쯤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고, 마지막 부인은 32세 연하의 아르헨티나 란제리 모델이었다. 그는 디즈니 그림이 새겨진 맥도널드 컵에 코카콜라 제로를 즐겨 마신다. 작년 한국 방문서 들른 남대문시장 표 1만원짜리 바지가 '어메이징'하다고 했다. 미 자본주의를 경멸하는 그가 자본주의를 절대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이 왠지 어색하다. 하지만 그의 마니아들은 "이러한 열린 경험과 남 눈치 안 보는 그의 태도가 희소성을 높이고 저항적 구원자 이미지를 더해준다"고 말한다.
혁명하기 전에 생각부터 해라!
사람들은 평소 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적어도 다섯 시간은 너끈히 떠들 정도의 넘치는 에너지를 과시하는 그를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그의 논리는 소위 말하는 '지적질'로 가득하다. 대중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위기는 한순간'이라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그때에, 그는 "자본주의는 언젠간 수명이 다할 것"이라며 독설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혁명하라"고 외친다. 하지만 "권위와 통제가 있어야 성공한다"는 것도 덧붙였다. 시시때때로 이뤄지는 시민 봉기가 실패하는 것도 그에 상응하는 논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행동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인터뷰 답변 마지막 한 줄을 굵은 글자로 표기했다. "국가와 혁명은 여자와 같다. 그들과 함께 사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들 없이 사는 건 더 불가능하다." 이혼을 세 번하고 결혼 생활이 '고통'이라고 말한 지젝으로서는 국가와 혁명은 함께하기엔 그만큼 힘들고 고통이 따른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국가와 혁명 없는 세상에 사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히든 챔피언' 저자가 한국의 중소기업들에 던지는 조언
헤르만 지몬.
세계적 경영학자이자 베스트셀러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의 저자인 독일의 헤르만 지몬 박사(66)는 24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삼성 같은 한국 기업의 창의성은 놀랍다”면서도 “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디자인·스타일링·브랜딩 세 가지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몬 박사는 “삼성이 3년 전 갓 노벨상을 받은 ‘꿈의 물질’ 그래핀(탄소를 얇게 펼친 신소재)에 대해 408개의 특허출원을 한 것을 보고 놀랐다. 실제 적용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삼성이 이미 그만큼 앞서가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창의적인 면모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몬 박사는 한국 기업들이 디자인, 스타일링, 브랜딩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이 있지만, 아직도 세계 상위 100대 브랜드를 보면 거의 미국 브랜드로 가득하다”며 “세계시장을 보라. 길에서 그냥 BMW차를 보면 누가 봐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은 BMW만의 개성과 고유 스타일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몬 박사는 한국이 기업가 정신을 더 높여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창업을 하면 보상받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창업 실패’는 ‘배운 경험’으로 여기지만, 한국에서는 ‘실패자’란 낙인이 찍힌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간 MIT 졸업생 11만명 중 2만6000명이 창업했다. 4분의 1이 창업한 것인데, 흥미로운 점은 외국인 학생의 창업회사 수가 미국 학생보다 많았다는 것”이라며 “기업가 정신은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속한 사회가 어떠한가가 중요하다. 그들이 독일이나 한국에 있었다면 창업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몬 박사는 자신의 저서 ‘히든 챔피언’에 나온 독일 중소기업처럼 한국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정신의 세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 현대차와 삼성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사장들과 이야기를 나눴다”며 “현대차와 삼성에 납품할 정도면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들인데, 해외 거래처가 없었다. 삼성과 현대차만이 오직 고객인 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히든 챔피언 기업들은 제품 80~90%를 해외에 공급한다”며 “한국 중소기업들이 국내 대기업 의존도를 줄이고 해외 공급을 늘리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신의 세계화’이고, 이는 젊은 세대가 다양한 해외 경험을 쌓음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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